로프스앤그레이 AI 경진대회가 보여준 전문직 채용 기준의 변화
보스턴에서 출발한 대형 로펌 로프스앤그레이가 주니어 변호사와 여름 인턴을 대상으로 생성형 AI 업무 설계 경진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단순한 사내 이벤트라기보다, 법률·금융·컨설팅처럼 문서와 판단이 중요한 전문직 조직에서 AI 활용 역량이 교육과 평가, 업무 개선 체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Financial News London 보도에 따르면 로프스앤그레이는 미국 7개 사무소의 1년 차 어소시에이트와 서머 어소시에이트를 25개 팀으로 나눠 ‘트레일블레이저 컵’이라는 AI 경진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회는 2026년 6월 11일부터 7월 20일까지 이어지며, 각 팀은 자신이 속한 업무 분야에서 반복적이거나 시간이 많이 드는 문제를 찾아 Harvey와 ChatGPT 같은 생성형 AI 도구로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진행 방식도 비교적 실무형이다. 참가팀은 먼저 제안서를 내고, 이후 발표 라운드를 거쳐 최종안은 로펌의 AI 리더와 시니어 파트너가 평가한다. 대회에서 나온 워크플로, 즉 업무 처리 절차와 AI 활용 방식은 사내 AI 라이브러리에 축적될 예정이다. 일회성 아이디어 공모가 아니라, 실제 조직 안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업무 자산을 모으는 방식에 가깝다.
이 프로그램은 로프스앤그레이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한 AI 교육 파일럿과 연결돼 있다. 핵심은 1년 차 어소시에이트와 트레이니가 업무 시간의 20%를 AI 학습과 실험에 쓸 수 있도록 인정한다는 점이다. 로프스앤그레이는 1865년 보스턴에서 설립된 글로벌 로펌으로, 회사 자료 기준 전 세계 변호사 1,500명 이상과 16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보스턴 독자에게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AI 도입이 개발자 직군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스턴권의 법률, 바이오 규제, 병원 행정, 대학 연구행정, 금융·자산운용 같은 전문 서비스 업무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흐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들이 AI 도구를 도입한 뒤 실제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내부 ‘AI 챔피언’을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AI 챔피언은 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엔지니어라기보다, 동료가 실제 업무에 AI를 적용하도록 돕고 사용 사례를 전파하는 사내 실무자에 가깝다. 로프스앤그레이의 경우 AI 프롬프트, 즉 AI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는 입력 사용량이 2년 전 월 수백 건 수준에서 최근 월 28만2,000건 이상으로 늘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기업들이 AI 투자 성과를 확인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많은 회사가 생성형 AI 라이선스, 보안 인프라, 내부 교육에 비용을 쓰고 있지만, 직원들이 도구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업무에 맞는 사용법을 모르면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 방식도 온라인 강의 한 번으로 끝나는 형태에서, 실제 팀 업무의 병목을 찾아 AI로 줄여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AI를 아는가”보다 “어떤 업무를 줄였고, 오류와 보안 위험을 어떻게 검토했는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유학생과 취업 준비생에게는 직무 준비의 기준이 조금 더 구체화됐다는 의미가 있다. 법대, MBA, 데이터 분석, 바이오 규제, 헬스케어 운영처럼 보스턴권에서 수요가 있는 분야에서 AI 역량은 별도 전공명보다 업무 맥락과 결합될 때 설득력이 커진다. 계약 검토, 실사 자료 정리, 규제 문서 초안, 고객 대응 기록 분석, 내부 리서치 같은 영역에서 AI를 활용하더라도 최종 판단과 검증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 면접이나 인턴십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강점도 단순히 “ChatGPT를 쓸 수 있다”가 아니라, 민감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출처를 어떻게 확인하는지, AI가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놓는 ‘환각’을 어떻게 걸러내는지에 있다.
현직 직장인에게는 AI가 개인 생산성 도구를 넘어 조직 내 역할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다. 모든 직원이 AI 모델을 개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각 팀에는 업무 흐름을 이해하고, AI 도구의 장점과 한계를 설명하며, 결과물을 동료가 재사용할 수 있게 정리하는 사람이 더 필요해지고 있다. 특히 보스턴의 로펌, 자산운용사, 병원, 대학, 바이오텍처럼 규제와 문서 업무가 많은 조직에서는 빠르게 생성하는 능력보다 검토 가능한 방식으로 쓰는 능력이 중요하다.
비자 스폰서십을 고려하는 독자에게도 간접적인 의미가 있다. H-1B, OPT, STEM OPT 관련 판단은 개인 상황과 회사 정책, 직무 성격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반화하기 어렵다. 다만 채용시장에서 고용주는 점점 더 “이 사람이 어떤 업무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를 좁게 볼 가능성이 있다. AI 활용 경험을 이력서에 적을 때도 도구 이름을 나열하기보다, 업무 시간 절감, 문서 품질 개선, 검토 절차 설계, 팀 교육 경험처럼 회사가 이해할 수 있는 결과 중심으로 설명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창업과 스타트업 관점에서는 모델 자체를 만드는 회사만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니다. 로프스앤그레이 사례는 전문직 조직이 AI를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교육, 보안, 감사 기록, 워크플로 설계, 산업별 템플릿, 사내 지식관리 수요가 생긴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스턴의 강점인 법률, 바이오, 헬스케어, 대학 연구 생태계와 맞물리면 범용 챗봇보다 특정 산업의 규칙과 검증 절차를 반영한 AI 도구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당장 모든 직무가 AI 직무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변화는 신입과 주니어에게도 AI를 안전하게 실험하고, 팀 업무에 적용하며, 결과를 설명하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는 회사들이 AI로 주니어 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면서도 다음 세대 전문가를 어떻게 훈련할지 고민해야 한다. 로프스앤그레이가 주니어 인력에게 AI 실험 시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보스턴의 한인 유학생과 직장인이 지금 확인할 지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반복 문서 작업, 리서치, 검토, 고객 응대, 데이터 정리 중 어떤 부분이 AI와 결합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결과 검증, 보안, 규제 이해, 커뮤니케이션처럼 사람이 책임져야 하는 역량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AI 도입 경쟁은 기술 자체보다 조직 안에서 실제 업무를 바꾸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